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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Music

돌로레스 오리어던 / Dolores O'Riordan과 크렌베리스

 

 

 


  
본      명 : 돌로레스 매리 에일린 오리어던
   생년월일 : 1971년 9월 6일
   출 생  지 : 아일랜드 리머릭
   장      르 : 얼터네이티브 락, 인디 팝, 포스트 그런지,
                   켈틱 락
   직      업 : 싱어 송 라이터
   취급악기 : 기타, 키보드, 피콜로, 보컬
   활동시기 : 1989년 ~ 현재
   소  속 사 : 생츄어리 레코드  
   연계활동 :  크렌베리스

   홈페이지 : Doloresoriordan.ie

  

 

돌로레스 매리 에일린 오리어던은 1971년 9월 6일에 아일랜드 리머릭 밸리브릭켄에서 막내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 났습니다. 그녀는 아이리쉬 싱어송 라이터로 크렌베리스를 이끌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2003년 팀은 해체하고 돌로레스는 2007년 5월 첫 솔로 앨범 "아유 리스닝? Are You Listening?" 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럼 블로그에 첫곡으로 선정한 링거와 함께 그녀의 경력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1990년 - 2003년 크렌베리스     

그럼 그녀를 스타덤에 올라서게 만든 "크렌베리스"에 대한 이야기 부터 하겠습니다. 1990년 리머릭 출신의 노엘과 마이크 호건 형제는 드러머  퍼겔 로울러를 영입하여 "크렌베리 소 어스"라는 밴드를 결성하게 됩니다. 당시 리드 싱어는 그들의 친구인 나이올 퀸이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성 싱어를 모집하게 됩니다. 이때 돌로레스가 다듬지 않은 자작곡 링거가 담긴 데모 테입으로 팀에 합류하게 됩니다. 돌로레스를 영입한 크렌베리 소 어스는 300개의 데모 테잎을 자작하게 됩니다. 데모 테잎이 모두 팔리자, 그들은 팀의 이름을 크렌베리스로 바꾸고 "링거"와 드림스"의 초기 버전을 수록한 들어간 데모 테잎을 제작하여 영국 전역의 레코드 회사로 보내게 됩니다. 이 테잎들은 피어스 길모어가 운영하는 지릭 스튜디오에서 만들었다고 하며 후에 그는 크렌베리스의 매니져가 됩니다. 데모 테잎은 레코드 회사뿐아니라 언론에도 큰 관심을 얻게 됩니다. 메이져 스튜디오들은 크렌베리스를 데려가기 위해 경쟁을 벌이게 됩니다.  

 

   

           

 

결국 크렌베리스는 아일랜드 레코드와 계약을 하게 됩니다. 크렌베리스는 길모어를 제작자로 첫 싱글 "언 서튼 /Uncertain"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러나 첫 싱글의 완성도에 문제가 제기되며 언론의 부정적인 리뷰를 얻게 됩니다. 이 사건은 멤버들과 길모어의 불화를 불러왔으며, 1992년 그들의 데뷔 앨범이 발매되기 전 팀의 해체 위기까지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밴드는 제프 트레비스를 새로운 매니져로, 스티븐 스티리트를 새로운 제작자로 영입하게 됩니다.

 

전성기  1993-1995

 

우여곡절 끝에 크렌베리스는 1993년 봄 데뷔 앨범 "에브리바디 엘스 이즈, 두잉 잇, 소 와이 캔 위? /Everybody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를 발표하게 됩니다. 그러나 싱글(드림스, 링거)과 앨범 모두 관심을 얻는데는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시작한 순회공연으로 차차 MTV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MTV는 크렌베리스의 비디오를 자주 방영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차차 그들의 인지도는 상승하게 됩니다. 1993년 2월 발매되었던 싱글 "링거"는 겨우 74위에 그쳤지만 다음해 2월에 다시 발매 되었을 때에는 싱글 챠트 14위까지 수직 상승하게 됩니다. 1994년 5월 다시 발매된 드림스는 27를 기록하며 데뷔 앨범을 영국 앨범 챠트 1위 까지 끌어 올리게 됩니다.   

 

 

한편 돌로레스는 밴드의 공연 매니져인 돈 버튼과 1994년 7월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후 돌로레스는 밴드의 메인 아이콘으로 더욱 강조되게 됩니다. 돌로레스는 팀내 입지는 더욱 강화 되어 갔고 두번째 앨범 "노 니드 투 아규 / No Need to Argue" 는 보다 강하고 현대적인 음악들을 선 보이게 됩니다. 이 음반은 미국 챠트 6위에 오르는 호 성적을 거두며 트리플 플레티늄을 기록하며 데뷔 앨범을 가볍게 능가하게 됩니다.

이 앨범은 빌보드 모던 락 트랙 챠트 1위의 "좀비 /Zombie"와 11위의 "오드 투 마이 패밀리 /Ode to My Family"를 낳게 됩니다.      

1995년 그들의 순회공연과 함께 두개의 싱글 "아이 캔 비 윋 유 / I Can't Be With You"와 "리디큘러스 토우츠 / Ridiculous Thoughts"를 내놓게 됩니다. 앨범의 판매는 계속 이어져 캐나다에서는 5x 플레티늄과 스위스에서 플레티늄 그리고 미국에서는 7x 플레티늄을 기록하게 됩니다. 

 

1996-1999

밴드의 세번째 앨범 "투 더 페이스풀 디파터드/ To the Faithful Departed "는 보다 하드한 앨범으로 전작과 같은 인기를 얻지는 못하게 되나 나름 성공을 하게 됩니다. 봄에 발매된 이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 2위 까지, 그리고 빌보드 챠트 200에 4위까지 오르게 됩니다. 긍정적인 리뷰들 속에서도 "노 니드 투 아규"의 판매 실적에는 크게 뒤지게 됩니다.  이 앨범은 미국에서 더블 플레티늄과 영국에서 골드를 기록하게 됩니다. 세번째 앨범에서의 첫 싱글은 "셀베이션 / Salvation"으로 모던 락 트랙 1위까지 올라갔지만 두번째 싱글 "프리 투 디사이드 / Free To Decide"는 영국 챠트 33위에 머무르는 부진을 보입니다. 급기야 1996년 가을에는 기획된 크렌베리스의 호주를 비롯한 유럽 순회 공연을 돌연 취소 하게 됩니다. 이때 부터 돌로레스의 솔로 데뷔 설이 나돌기 시작합니다. 

 

 

1999년 크렌베리스는 그들의 4번째 앨범 "베리 더 햇츠트 / Bury the Hatchet "를 발표하게 됩니다.  2월에 발매된 싱글 "프로미시스 / Promises"를 마지막으로 미국 싱글 챠트에서 그들의 이름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앨범은 영국에서 7위와 미국에서 13위까지 오르며 골드를 기록하게 됩니다. 앨범의 두번째 싱글 "애니멀 인스팅 /Animal Instinct"은 영국에서 챠트에 오르는데 실패하며 그들의 인기의 쇠락을 예고 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호주 등지에서는 싱글 챠트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그후 3번째 싱글 "저스트 마이 이메지네이션 / Just My Imagination"과 4번째 "유 앤 미 / You & Me"를 내놓게 됩니다. 이후 크렌베리스는 1999년 4월 부터 2000년 7월까지 장기간 세계 순회 공연을 단행하게 되는데 이 공연은 크렌베리스의 최고의 공연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크렌베리스는 이 공연 이후 "베리 더 햇츠스 - 컴플리트 세션스 / Bury The Hatchet - The Complete Sessions"라는 더블 CD 내놓게 됩니다. 

결별 : 2000-2003

 

2001년 10월 그들은 마지막 앨범인 "웨이크 업 앤 스멜 더 커피 /  Wake Up and Smell the Coffee"를 발표하게 됩니다. 밴드의 전 제작자인 스티븐 스트리트가 귀환하여 뮤직 비디오를 만들게 됩니다. 이 앨범은 빌보드 200에 46위로 기록되며 영국 챠트 61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앨범의 첫 싱글 "애널라이즈 / Analyse"는 영국에서 챠트 진입에 실패하게 되나 미국에서는 어덜트 탑 40에 26에 오르게 됩니다. 2002년 1월 두번째 싱글 "타임이즈 티클링 아웃 / Time Is Ticking Out"과 "디스 이즈 더 데이 / This Is The Day"를 차례로 내놓으나 챠트 진입에는 실패하게 됩니다. 다음해 그들은 베스트 앨범 "스타스 - 베스트 오브 1992-2002"와 동명 제목의 뮤직 비디오 dvd를 발매하게 됩니다. 이 앨범은 영국 챠트 20위에 오르게 됩니다.

 

크렌베리스는 2002년 10월 유럽 공연을 시작하여 12월 말까지 공연을 하게 됩니다. 2003년 중반 밴드는 롤링 스톤스 공연에 오프닝 가수로 초대 공연과 자신들의 단독 공연을 가지게 됩니다. 2003년 9월 새로운 앨범은 준비하는 와중에 멤버들이 각자 솔로 활동을 위해 잠시 크렌베리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발표하게 됩니다.

솔로


2003년 스파이더맨 2의 사운드 트랙에 그녀의 첫 솔로 앨범 "아유 리스닝? /Are You Listening?" 에 삽입된 블랙 위도우가 실리게 됩니다.  2004년 돌로레스는 이탈리안 가수 주케로의 앨범 "주 & 코 / Zu & Co."에 등장하여  "퓨어 러브 /Pure Love"를 듀엣송으로 부르게 됩니다. 이 앨범은 스팅, 쉐릴 크로, 루치아노 파바로티, 에릭 클립톤이 참여한 앨범입니다. 같은해 그녀는 에빌렌코의 사운드 트렉에 참여하게 됩니다. 2005년 그녀는 잼 & 스푼의 앨범 트라이포매틱 페어리 테일 3003에 게스트 보컬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한편 돌로레스는 아담 샌들러의 코미디 영화 클릭에 웨딩 싱어로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합니다.

 

 

2007년 5월 4일 첫 솔로 앨범 "아 유 리스닝?/Are You Listening?"이 아일랜드에서 발매되게 됩니다. 이로 부터 3일후 유럽에서 발매가 되었고 또 8일후에는 북미에서 발매 되게 됩니다. 브릿 어워드 위너 유스가 제작한 첫 싱글 "오디너리 데이 / Ordinary Day"는 4월 말에 앨범보다 먼저 발매 되었고 두번째 싱글 "웬 위아 영 / When We Were Young"은 8월에 발매 되었습니다. 2007년 11월 19일 돌로레스는 병고로 유럽 순회 공연을 취소하게 됩니다.  

2008년 말 그녀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그녀의 두번째 솔로 앨범 노 배게지 / No Baggage"가 2009년 8월 24일 발매된다고 전했습니다. 2009년 그녀는 데이비드 그리에코의 신작 영화 시크릿 오브 러브에 첫 연기 도전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돌로레스의 이모저모

1994년 7월 18일 돌로레스는 듀란 듀란의 전 공연 매니져 돈 버튼과 결혼하여 1997년 11월 23일 첫 아기 테일러 박스터를 낳게 됩니다. 2001년 1월 27일에는 둘째 몰리 리를 2005년 4월 10일에는 세째 다코타 레인을 낳게 됩니다.

1998년 돌로레스는 리머릭주의 킬말록에 위치한 리버필트 스터드라고 불리우는 61 헥타르(150에이커) 달하는 거대한 대지를 사들이게 됩니다. 그녀는 2004년 대지를 팔기 전까지 6년간 살았다고 합니다.   

2006년 돌로레스는 아일랜드에서 최고 갑부 여성 탑텐에 선정 되었다고 합니다. 

돌로레스는 현재 더블린 주 하우스에서 현재 남편과 4명의 아이들과 살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leonjuhee?Redirect=Log&logNo=150048723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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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내가 정말 미친듯이 들어댔던
매력적인 보이스의 그녀..돌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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